편집부 락기
화려하지 않은 적당하고 고풍스러운 조명이 구석구석을 비추는 벙커1. 서울 모처에 자리 잡고 있는 이곳은 은은한 멋을 내는 이들에겐 널리 알려진 장소다. 평일 오후, 한적하다기보단 여유로움이 묻어나는 이곳에서 커피 한 잔을 들고 왼쪽 다리를 오른쪽 다리에 포개어 앉으면, 마치 서양의 고급 시가클럽에 온 느낌마저 든다.
포근해 보이는, 마치 나를 위한 자리인 것 같은 의자에 앉아 단정히 벙커깊수키를 꺼내어 읽는다. 한 글자 한 글자 음미하며 천천히 읽어 내려가던 중 언제부턴가 시야에 걸리는 남자가 신경 쓰여 정신이 산만해진다. 한껏 멋을 부리진 않았지만 단정하며, 튀지 않지만 시선을 끄는 그런 남자.
왜 저 남자가 내 시선을 부여잡는지 이해할 수 없다.
‘신경 쓰지 말자. 오늘은 평일의 여유로움을 느끼려고 온 자리니까.’
다시 잡지에 집중하려 애를 쓴다. 종이는 한 장씩 넘어가는데, 머리에 글은 남지 않는다. 왜일까? 혹시 저 남자가 풍기는 멋에 대한 궁금증일까? 이러다 시간만 허비하고 여유로움은 휘발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까지 든다.
생각의 끝에 다다른 결론은 저 남자의 멋을 확인해보자는 결심이다. 찬찬히 살펴보자. 잘 정돈된 외투와 그 위에 포개져 있는 재킷. 단정한 바지 그리고….
셔츠
셔츠가 시선을 더 잡아끌었다. 자세히 살펴본 바 저 남자의 멋은 셔츠에서 풍기는 고풍스러움에 있었다. 셔츠에 매료되어 자세히 뜯어보니 소매에서 낯선 분위기가 풍긴다. 뭐지? 저 소매는? 설마 소매 각인인가?
고급셔츠, 맞춤 셔츠에나 들어간다던 소매 각인이다. 고가의 셔츠인가? 역시 그래서 고풍스러운 느낌이 나는 것인가? 소매 각인은 흔히 자신의 위치나 직함, 은밀한 아이덴티티로 새기기 마련이다.
어떤 셔츠일까 하는 궁금증이 소매 각인으로 인해 더욱 커져간다.
인내의 한계, 커지는 궁금증 때문에 더 이상 참을 수 없게 되었다. 다가가기로 결심이 서자마자 홀린 듯 남자에게 다가가 팔목을 잡았다.
“소매에 각인 좀 봐도 될까요?”
“네?”
그 남자의 대답을 끝까지 듣지도 않고 거칠게 소매를 부여잡으며 소매 각인의 글씨를 확인해 보았다.
내 닉네임이 COCOA인데, 우연일까? 이 남자. 네이밍 센스도 남다르다.
“이 셔츠, 브랜드가 뭔가요?”
소매 각인 확인을 마치자마자 남자가 말할 틈을 주지 않고 질문을 이었다.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한 그는 놀란 눈으로 날 보며 말을 이었다.
“파이브 데이즈.”
“가격은요?”
“다섯 벌에 79,900원이요.”
이제는 내가 놀랄 차례였다. 어떻게 이런 저렴한 가격에 고풍스러운 느낌과 소매 각인까지 가능한가?
“브랜드가 뭐라구요?”
“파이브 데이즈, 파이브 데이즈 셔츠요.”
이제 안정을 찾은 듯한 그는 브랜드 이름을 반복하며 말했다. 나는 외면하듯 그 남자에게 돌아서며 파이브 데이즈 셔츠를 찾았다.
고르는 수고로움이 없는 다섯 벌의 ‘파이브 데이즈’ 셔츠
파이브 데이즈 셔츠. 그 남자의 말대로였다. 다섯 벌에 79,900원. 게다가 셔츠를 하나 하나 고르지 않아도 된다고 한다. 5벌 랜덤 패키지 상품이라니. 저 남자도 5벌 패키지로 샀을까? 동화 속 우렁 각시가 떠오른다.
소매 각인도 가능하네? 랜덤으로 5벌을 발송함에도 소매 각인이 가능하다니. 자세히 보니 5벌 중 1벌에 한글 3~6자 영문 3~11자의 사이의 글자수를 새길 수 있다고 한다. '다섯 벌 다 하고 싶으면 어떡하지?' 란 생각을 하고 봤더니 한 벌당 2,200원만 추가하면 다른 셔츠에도 소매 각인을 새길 수 있다고 한다.
가만, 랜덤 셔츠에 어떤 소매 각인을 넣을 지 정해야 하나? 이것도 고르는 수고로움이 없다. 다섯 벌에 각각 셔츠에 맞는 색상으로 소매 각인을 새겨준다고 한다. 고르는 귀찮음이 큰 사람에겐 정말 매력적이다.
그런데, 다섯 벌을 직접 골라도 되는 상품도 있네?
당신이 직접 고르는 다섯 벌의 ‘파이브 데이즈’ 셔츠
'89,900원'
가격이 먼저 보였다. 랜덤으로 받는 셔츠보다 만 원이 더 비싸다. 직접 고르는 게 왜 비싼지 몰랐는데, 내용을 뜯어보니 다섯 벌 패키지로 된 세트는 고르고 포장해서 전달해야 하는 수고가 덜 들어있기 때문에 가격이 더 저렴하다고 한다.
인건비가 포함된 가격이라니 뭔가 합리적이면서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이 인건비에는 원하는 셔츠에 원하는 소매 각인이 포함된다고 한다. 단, 소매 각인의 색상은 마찬가지로 셔츠색과 잘 어울리는 색으로 새겨준다고 한다.
머릿속으로 정리해보자.
1. 맞춤 셔츠나 고급 셔츠에만 들어간다던 ‘소매 각인’을 새길 수 있다.
2. 다섯 벌을 구매해도 저렴한 가격, 합리적 가격이다.
3. 한 벌 한 벌 고르기 귀찮은 사람은 하이디 유니폼이 골라주는 랜덤 세트로 구매하면 더 싸게 살 수 있다.
4. 셔츠 하나에 소매 각인은 무료로 제공된다.
- 고르지 않아도 되는 셔츠 (한 벌에 무료 각인, 각인이 들어가는 셔츠는 랜덤)
- 직접 고르는 셔츠 (한 벌에 무료 각인, 글자 들어가는 셔츠도 고를 수 있다)
- 한글은 3~6자, 영문은 3~11자 소매 각인이 가능하다.
- 폰트는 궁서체와 필기체 두 가지 중 하나를 고르면 된다.
5. 다른 셔츠에 소매 각인을 넣으려면 각 한 벌에 2,200원만 추가하면 된다.
6. 3~8월은 춘추용 원단, 9~2월은 겨울용 원단을 쓴다고 한다.
7. 마지막으로 정갈한 멋을 풍기는 셔츠 다섯 벌을 얻을 수 있다.